올해 된장 만들기는 여러 가지 좌충우돌의 상황 속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장가르기 후 몇 주가 지났고 아직 완성된 맛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현재까지의 상황과 예측을 통해서 메주에서부터 시작된 검은곰팡이와의 사투를 적어보려 합니다.
1. 메주 속을 씻으면 안 된다고? 씻으면서 1차 제거
메주 두 덩이로 된장 만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흐르는 물에 솔로 씻어내고 말리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어머니 지인이 사용한다는 간편한 방법을 따라 메주를 쪼개어 소금물에 담그면 되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메주를 잘게 쪼개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노랗고 허연 곰팡이 층만 보이는데 나머지 하나는 검은곰팡이가 보입니다. 이때 조금 더 살펴보고 메주 교환을 생각했어야 하는데 이 부분만 제거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에 어머니는 제가 자리에 없는 사이 물로 씻어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한참을 뭔가 씻으시길래 상황을 확인하고는 '내가 씻겠다'라고 멤버 체인지했습니다. 살릴 수 있는 덩이들을 살짝살짝 씻어내다 보니 슬슬 화가 올라옵니다. 쪼개는 족족 포자들이 펑펑 터지니 메주는 온통 검은곰팡이 집입니다. 그 이후에는 물에 대놓고 솔질을 했고 살릴 수 없는 조각은 버렸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시간을 거쳐 조각나고 허옇게 물에 불어버린 메주까지 소금물에 담갔습니다. 말리는 과정? 그럴 겨를이 없었습니다.
전문가는 이리 말합니다. '물에 담근 채 씻으면 맛이 빠져나가요. 흐르는 물에 겉 부분만 솔로 문질러 씻어내야 합니다.' 담그지는 않았지만 흐르는 물에 메주 알이 허옇게 불어날 정도로 씻었으니 담근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별반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의 이론과 정면 대치되는 상황상황에 불안한 것이 사실이지만, 어쩌면 경험을 통해 새로운 이론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해봅니다. 시간이 지나 장맛은 어떤 말을 해줄까요?
2. 소금물에 담근 후 숙성과정에서 2차 제거
메주 담근 통을 아파트 베란다 한켠에 고이 모셔놓았습니다. 뚜껑을 열어 한 번씩 확인하는데 짠내, 메주 내가 진동을 합니다. 씻어냈지만 여전히 찜찜함이 밀려옵니다. 발견하지 못한, 씻어내지 못한 곰팡이들이 물에 풀어져 한 몸이 되어버리겠지라는 생각에 씁쓸할지도 모를 장맛이 걱정됐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에는 보이지 않던 곰팡이가 눈에 확인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가 숟가락으로 그 부분을 제거하셨는데, 이미 다 퍼졌을지 모를 검은곰팡이 잔재로 인해 올해의 장은 망한 것이 아닌가 싶어졌습니다. 제거한들 이미 다 퍼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쉽게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맛이 궁금하여 손가락으로 찍어보면 그저 짠맛만 났습니다.
3. 장가르면서 3차 제거, 간장의 맛
드디어 장가르기를 하는 날입니다. 간장을 조금 걸러내고(올해 장은 된장 중심입니다. 지인에게 들은 방법으로는 장가르기 따위 없이 그냥 된장으로 직행인데 어머니가 물을 넉넉히 부은 덕에 간장을 한 병 얻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은 메주 덩어리들을 곱게 풀어주면 되는데 그 과정에서 또 거뭇거뭇한 곰팡이 흔적이 발견됩니다. 숟가락으로 그 부분을 아낌없이 제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걸러낸 간장의 맛은 어떨까요? 정말 몇 년 만에 맛보는 집간장인데, 어머니의 감탄이 반갑습니다. '참 맛있다.' 먹어보니 단맛이 감도는 짠맛입니다. 쓴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된장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4. 된장 통에 담그면서 맛보기
항아리에 넣고 숙성시키면 최고일 텐데 아파트 베란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거주 중인 아파트가 차로변에 위치한지라 창문을 자주 열어놓기 제한되거든요. 그래서 어느 정도 숙성 후에는 냉장보관을 하려고 김치통에 된장을 담았습니다. 그 위에 소금을 솔솔 뿌리고 큰 다시마 세 덩이를 물에 살짝 씻어 걸어놓으니 촉촉한 가운데 물기가 제거되네요. 된장에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덮어준 뒤 그 위에 천일염을 솔솔 뿌려주었습니다. 지금 뒷베란에서 뚜껑을 열어 숙성 중입니다. 다시마 덮기 전에 염도가 어떤지 확인하려 먹어보았는데 다행히 된장에도 쓴 맛은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직 결과를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검은곰팡이는 쓴 맛이 난다', '메주 속을 씻으면 안 된다', '메주를 오래 씻으면 단 맛이 빠져나간다.' 전문가들의 이론과 어긋나는 행위가 올해 장 만드는 과정에서 빈번하게 일어났습니다. 어떤 장맛이 탄생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그런데 간장의 맛으로 추측하건대 장맛이 생각보다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 검은곰팡이가 피어 있다고 너무 낙담하지 마세요. 일단 제거하고 시간에 기대어 숙성시키면 맛도 좋고 건강에도 좋은 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022년 일상 > 식(食)과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우살이차로 담근 겨우살이주(酒) (0) | 2022.03.29 |
---|---|
제철 주꾸미볶음과 주꾸미죽(먹물죽) (0) | 2022.03.26 |
냄새부터 맛있는 겨우살이차 만들기 (0) | 2022.03.25 |
겨우살이의 놀라운 효능 (0) | 2022.03.25 |
야채빵, 꽈배기가 생각날 때 자미당 (0) | 2022.03.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