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든 겨울이든 먹을거리 걱정이 없는 세상이지만, 김장을 끝내야 뭔가 겨울 준비가 된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어머니의 영향이다. 올해도 어머니와 김장을 담갔다. 올해 관심사는 옛날 방식의 회복이었다.
1. 바뀌어 버린 김치 레시피
사실 특별히 뭔가를 바꿨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점점 김치가 제맛을 잃어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김장 김치야 저장식품이니 묵어갈수록 맛있는 신맛이 올라와야 정상인데 '정말 맛있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언젠가는 배추를 잘못 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했고 언젠가는 고춧가루나 소금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런데 올해 문득 생각해 보니 옛날과 만드는 것이 사뭇 달라진 것 같더란 말이지. 간도 그렇고 넣는 것도 그렇고 달라지긴 했다.
사실을 확인하니 귀가 얇은 어머니가 친구분들과 어울리면서 '이렇게 하면 맛있다'라는 여러 가지 항목들을 하나하나 곁들인 결과였다. 들어가는 것이 많으니 돈도 노력도 더 드는데 맛이 없다면 이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멍청한 짓이란 말인가.
어릴 적 어머니 김치는 맛있다고 동네에서 나름 인정받고 있었는데 왜 더 하위의 레시피에 귀를 기울여 집안의 맛을 변질시키는가에 대하여 어머니에게 약간의 잔소리를 해댔다. 그리고 이번 김장에서는 잃어버린 옛날맛 복원에 신경을 쓰기로 했다.
2. 간은 세게, 양념은 간단하게
'저염식', 건강을 지향하는 트렌드의 영향이었을까. 김치가 점점 싱거워지고 있었다. 그 사실은 '김장의 꽃' 쌈 싸 먹기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예전에는 쌈을 많이 먹다 보면 짜고 매워서 입이 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어느 때부터인지 쌈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그런 느낌을 받기 어려웠으니 단지 맛있기만 했다.
김장 김치는 저장식품이다. 그러니 저염이라는 개념은 설 자리가 없다. 맨입에 짜게 만들자. 그래야 시간이 지날수록 맛있게 익어가는 김치를 만날 수 있다. 묵은지가 제대로 묵은지이려면 저염으로는 아쉽다.
올해는 양념에 기본으로 들어가는 매실액도 배제했다. 옛날엔 그런 거 넣지 않아도 김치맛이 훌륭했으니 말이다. 멸치액젓, 새우젓, 풀을 쒀 넣고 뉴슈가를 넣었다. 넣고 싶지 않았으나 어머니의 강한 요청으로 까나리액젓도 추가하긴 했지만.
부족한 간은 소금으로 보충하면서 2024년의 김장을 마쳤다.
3. 김치맛은 회복되었을까.
아직 배추김치는 숙성되지 않아서 맛이 들 때까지 좀 기다려야 한다. 하지만 미리 한 포기 꺼내서 먹어보니 시원함이 느껴졌다. 얼마나 그리운 시원함인가. 또 김장 전에 옛날 방식으로 먼저 담근 총각김치는 맛이 어느 정도 들었는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시원하고 맛이 좋은 신맛이 입 안에 감도니 입맛대로 먹다가는 금세 한 통을 다 비울지도 모르겠다. 아껴 먹어야겠다.
새로운 것이 좋은 것도 있다. 하지만 전통의 음식은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제일 좋은 것 같다. 여기저기 전문가들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보니 음식 하나만 해도 새로운 레시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이것은 김치 같은 전통음식에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냥 옛날 김치를 사랑한다. 그대로 가장 빛나고 있으니 굳이 새로운 빛을 곁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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