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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일상/수행과 일상

천지팔양신주경 위경 논란에 대한 생각

by 주주모니 2022. 5. 7.

요즘 천지팔양신주경을 읽고 있습니다. 갑자기 가까운 이가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기도를 좀 해달라기에 고민하다가 천지팔양신주경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이 경전은 위경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요, 오늘은 그에 대한 생각을 적어보려 합니다.

 

 

 

위경(僞經)의 사전적 의미

위경은 말 그대로 거짓 경전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석가모니의 이름을 빌리고 있지만, 부처가 직접 설하지 않은 불교 경전입니다. 이들은 인도 및 서역에서 결집되어 번역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중국과 같은 곳에서 제작된 것입니다. 

 

대표적인 위경으로는 부모은중경(佛說父母恩重經), 천지팔양신주경(佛說天地八陽神呪經) 등이 있으며, 사십이장경(佛說四十二章經)도 이의 범주에 든다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경전은 아함경(阿含經) 계통이 전부입니다. 따라서 부처님이 멸하시고 4 ~ 5백 년 후에 이루어진 대승경전, 즉 '부처님이 이렇게 설하셨다'라는 어구로 시작되는 모든 경전은 비불설(非佛說)에 해당됩니다.

 

 

무엇을 위경이라 할 것인가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겠습니다. 무엇을 거짓이라고 해야 할까요? 단지 부처 육신의 입으로 나왔는가, 안 나왔는가에 따라 진짜와 가짜를 논하는 것으로 우리가 얻을 유익이 얼마나 있을까요? 이런 구분은 너무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담고 있는가, 무엇을 전하고 있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부처를 배우고 진리를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자라면 그 경전이 부처님이 제시하고자 했던 진리에 부합되는가를 고민하는 것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육신을 이뤘던 부처 입을 통하지 않았더라도 그 속을 흐르는 가르침이 우리를 깨어나게 하고 자유롭게 한다면 이미 진리이고 진짜인데 거짓이라 칭함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저는 이런 이유로 대승경전을 위경이라 이야기하는 논란에서 아주 자유로워졌습니다. 대승경전을 읽어나가면서 지금껏 갇혀왔던 내 답답한 삶이 깨어지고 편해짐을 느꼈으므로 대승경전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천지팔양신주경을 읽었을 때의 느낌

누군가는 천지팔양신주경을 '내용이 두서가 없고 난잡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네, 그렇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장경, 법화경을 어느 정도 독경했으며 금강경은 아주 조금 읽은 저로서는 첫 독경 시 굉장히 환희로웠습니다.

 

두서없고 난잡하다는 표현에 해당되는 그 부분이 저에게는 다르게 다가온 것인데요. 각각의 경전은 주로 강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천지팔양신주경을 읽으면서 지장경, 금강경, 법화경이 조화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것을 나쁘게 보면 짜깁기한 듯하여 두서없고 난잡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고 저처럼 좋게 보면 여러 경전의 가르침이 하나로 합하여진 환희로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겠지요.

 

아무튼 모든 가르침의 종착점은 하나이므로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자면 법이 이어지고 이어져서 결국 하나의 길로 인도되기 마련입니다. 저는 각 경전이 이어주는 길을 이야기할 수준이 아니지만 팔양경에서는 지장경의 인과를 만나고 금강경의 공을 만나고 법화경의 불성을 만납니다. 모두 이어진 길이며 하나의 길입니다.  

 

내가 이 경전을 위경이라고 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없어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되는가일 뿐

다시 생각해도 경전에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 가르침에 부합되는가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은 우리 본성을 찾아가는 일입니다. 그것은 편안해지는 길이며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천지팔양신주경에서 저는 제 안의 불성을 봅니다. 세상의 본질인 공을 봅니다. 안다고 말할 수준도 아니고 안다고 할 바도 없지만 그렇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경전은 부처님이 설하신 가르침이며 진짜 경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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